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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다이닝] 볼레티 후기

[파인다이닝] 볼레티 후기

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내방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볼레티에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엄청난 미식가가 아니고, 파인다이닝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맛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감흥을 기록하기 위한 용도의 글이다.

9만원 상당의 디너 코스로, 밥 한끼로는 비싼 금액이었지만 전반적으로 가격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갔던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 좋았다. 나도 코스에 나오는 음식들이 다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는데 요리가 하나하나 나올 때 마다 '맛있음'의 정도를 갱신해버려서 앞의 음식들이 어떤 음식이었는지 잊어버리게 되는게 아쉬웠다.

전반적인 경험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음식 맛 말고도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모든 그릇이 따듯하게 데워져 나오는 부분, 그리고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갈나면 쉐프님이 직접 나와서 인사해주시는 것을 포함한 것이다.

코스요리는 아래와 같다.

  1. 식전빵 + 트러플과 크림 치즈가 곁들여진 타르트

식당에서 직접 구웠다고 하는 식전빵과 짭잘하게 간이 된 생크림이 함께 나왔다. 빵은 굉장히 바삭한 식감이었는데 입안에서 부스러지거나 목이 맥히는 퍽퍽한 느낌은 아니었고, 같이 나오는 크림만 먹어봤을 때는 꽤 짭짤하게 느껴졌는데 빵에 발라먹으면 간이 정말 딱 알맞는 느낌이었다. 한입거리 타르트는 입에 넣는 순간 크림 치즈향과 트러플향이 절묘하게 입안에 퍼졌다.

  1. 비트 라비올리

(집에서는 잘 먹지 않던) 비트를 이용한 라비올리가 예쁜 꽃처럼 접혀 나왔다. 안에는 졸인 양파 같은것이 들어있는것 같은데 살짝 달달한 소스와 비트의 식감, 그 속의 조화가 좋았다.

  1. 돌문어

엄청 부드럽게 익혀진 문어가 라구소스와 감자와 함께 나왔다. 문어의 부드러운 식감이 너무 좋아서 자연스럽게 그 식감을 느끼기 위해 천천히 씹게 된다. 감자와 소스와의 조화도 좋았다.

  1. 송아지정강이살 (Veal shank ossobuco)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요리였는데, 송아지정강이살과 옥수수를 이용한 빵 같은 음식이 함께 나온 요리였다. 고기와 아래쪽에 깔리는 옥수수, 그리고 소스 각각은 익숙한 맛이면서도 어느 하나 간이 세거나 튀지 않았다. 이들을 함께 먹으니 정말 입에서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1. 먹물파스타 (Orecchiette)

오르키에테라고 불리는 파스타를 이용한 먹물 파스타였는데 비스큐 소스에서 오징어의 향이 자연스럽게 나서 먹물파스타의 비주얼과 오징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소스와 먹물파스타의 조화가 너무 좋았다. 함께 나오는 새우는 너무 탱글하여 씹었을 때 입에서 터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런 신선한 식감이 새우의 신선도에서 오는건지, 익힘 정도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둘다 완벽해야하는것인지 궁금했다. 함께 나오는 치즈와 말린 토마토도 잘 어울린다.

  1. 트러플 + 리코타 치즈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

볼레티의 시그니처라고 소개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모든 코스에서 가장 맛있었다. 비주얼은 마치 계란 노른자 위에 탄 베이컨을 올려준것 같았지만 풍부한 트러플 향과 버터, 그리고 라비올리를 씹었을 때 그 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치즈 향이 너무 조화롭고 풍부해서 단 세 점 밖에 나오지 않은게 아쉬웠다. 다만 함께 먹었던 여자친구는 좀 더 먹으면 약간은 느끼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적절한 양 조절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1. 클렌저 - 감귤 셔벗

코스요리 중간, 메인요리가 서빙되기 전에 디저트(?) 느낌의 클렌저를 먹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독특한 경험이었다.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었고, 깔끔했다.

  1. main 3종 - 한우 안심 스테이크, 농어 스테이크, 양갈비 스테이크

4명이었기에 메인 3종을 모두 주문하여 먹어볼 수 있었다. 모두 미디엄레어(추천해주신 굽기) 로 나왔고, 양갈비와 한우 안심 스테이크는 가니쉬가 동일했다. 미니 양배추와 잘게 채썰어서 튀긴것 같은 감자 블럭(?) 이 함께 나왔는데 이 감자 블럭이 의외로 엄청 맛있었다. 얇게 층층이 쌓인 감자가 튀겨져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식감도 좋고 고기와도 잘 어울렸다.

안심 스테이크는 엄청 부드럽고 간도 잘 맞았다. 세 가지 메인 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것 같다. (추가 금액이 있었다...)

양갈비도 괜찮았는데 양갈비 특유의 향이 조금은 났다. 양갈비만 먹었으면 잘 몰랐을것 같은데 안심 스테이크와 같이 먹으니 자연스럽게 맛의 비교가 되었던것 같다. 괜찮았지만 안심스테이크의 맛보다는 아쉬운 느낌. 나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어머니는 양갈비 특유의 향이 그리 맞지는 않으셨던것 같다.

농어 껍질은 바삭하게 튀기고 속은 잘 익은 생선 스테이크였다. 최근 연어 스테이크 쿠킹클래스를 다녀왔던지라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나온 소스도 간이 잘 맞았고 부드러웠는데 껍질이 바싹 튀겨지다보니 잘 잘리지 않았고, 생선의 간은 슴슴한 편이라 소스를 부어 먹을때 딱 좋았던것 같다.

  1. 밤맛 젤라또와 티라미수 크림 + 딸기맛 푸딩

흑백요리사의 밤티라미수 열풍이 분 탓인지, 원래부터 이런 디저트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밤맛 젤라또와 티라미수 크림이 디저트로 나왔다. 젤라또는 딱 바밤바 맛이었는데 질감이나 맛은 좀더 고급스러운 느낌이긴 했다. 그릇에 예쁘게 담겨서 그런거일지도.

그리고 어머니 생신이라고 말씀드리니 딸기맛 푸딩에 Happy birthday 레터링을 적어서 주셨다. 대단한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측면에서 빠지는 것 없이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좋았다. 딸기맛 푸딩은 딱 보기에 완전 명란젓 같았다.

총평

  • 음식들은 소스를 포함해서 간이 쎄거나 부족한 것 없이 전반적으로 다 적당하게 나왔고, 함께 먹었을 때 튀는 맛 없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우리는 따로 와인과 페어링하지 않았는데 와인과 함께 먹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 개인적으로 볼레티의 시그니처라고 하는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라비올리가 제일 맛있었고, 그 다음은 안심스테이크 메인이 괜찮았다. 다른 음식들도 다 너무 만족스러웠다.
  • 파인다이닝에서는 기본인지 모르겠으나 서버님들도 너무 친절하시고, 그릇도 기분 좋은 온도로 데워져 나오는 등 사소한 면까지 신경쓰는 느낌을 받아 전반적인 식사 경험이 좋았다.

엄마가 너무 만족스러웠는지 앞으로 가족 모임을 여기서 하자는데... 큰일이다...ㅋㅋㅋ